언론속의 50+코리안 입니다.
新보릿고개' 겪는 50대 퇴직자들…"함께 행복의 길 찾고 싶어" | 2016-12-28 | 운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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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을지로 3가에 문을 연 노인 전문매장의 모습.
40대 후반, 금융전문가로 잘나가던 시절 그에게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아내에게 병이 찾아온 것이다. 그날로 그는 직장도 일도 모두 중단하고 부인이 투병하고 있는 미국으로 날아갔다. 아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면서 그는 한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이 시간이 어쩌면 인생 후반부를 준비할 수 있는 '하프타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 길로 노년학이라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2005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에서 노년에 대해 공부하면서 불안과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한국의 50대 퇴직자들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주고 싶었다. '50플러스 코리안 운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013년부터 '50대가 행복한 그날까지'를 외치고 있는 한주형(56`사단법인 50플러스 코리안 회장) 씨를 서울 서초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왜 50대인가.
▶한국의 평균 퇴직 연령이 53세다. 한창 일할 나이일 뿐 아니라 돈이 가장 많이 드는 나이이기도 하다. 그들은 퇴직 후 오랜 직장생활로 인한 피로와 상처를 치유할 시간도 없이 또 다른 돈벌이를 찾아 나서고 있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을 뿐 아니라 돈도 없는 한국의 새로운 취약계층이다. 그들을 위해 일을 하고 싶었다.
-50대가 취약계층이라는 이야기는 무척 새롭다.
▶한국의 50대는 '새로운 보릿고개'를 경험하고 있다. 우리의 노년 복지제도는 65세 이상의 연령에만 맞춰져 있다. 퇴직하고 65세가 되기까지, 그들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인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생산활동을 하는 일꾼도 아니어서 정체성의 혼란마저 겪고 있다. 더구나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롤모델조차 없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대책 없이 노출되는 셈이다.
-50플러스 코리안 운동의 핵심은 무엇인가.
▶함께 배우고, 함께 나누고, 함께 풀어가자는 것이다. 전반전을 죽기 살기로 뛴 50대들이 잠시의 쉼도 없이 바로 후반전을 뛰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인생을 바라보고 정리하는 하프타임의 시간을 가지면서 인생의 후반부를 서서히 준비하자는 것이 이 운동의 핵심이다. 이젠 100세 시대다. 인생의 여정이 달라졌다. 퇴직 후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인생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그 방법을 배우고 같이 풀어가면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다.
-운동본부의 핵심 단어가 '빅 시프트'(Big Shift)라고 듣고 있다.
▶대전환이다. 퇴직을 하면서 지금까지와 다른 인생을 살아보자는 운동이다. 지금까지 내 가족 내 직장을 위해 살아왔다면 우리 사회, 우리 공동체 인식을 갖자는 것이다.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고, 후손을 위해 좋은 유산을 남겨주자는 운동이다. 여기에 새로운 일자리까지 생기면 더욱 좋다.
-문제는 한국의 50대는 집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50대는 갈 곳이 없다. 70, 80대는 경로당이 있고, 60대는 노인복지관이 있다. 그런데 50대와 60대 초반은 갈 곳이 없다. 나가면 자존심에 상처입고 자존감을 잃는다. 더구나 돈도 없다. 자연히 집에 있게 된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산밖에 없다. 산으로 가는 쓸쓸한 50대를 도심 한복판으로 끌어내야 한다. 이들을 위해 '게더링' 공간을 만드는 것이 이 운동 중의 하나다.
-50대를 위한 사랑방 운동이라고 이해하면 되는가.
▶서울시는 최근 '인생이모작지원센터'를 만들었다. 액티브 시니어들을 위한 나눔과 배움 힐링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생긴 것이다. 공공기관이 아니더라도 50대를 위한 모임의 공간을 만들 때가 됐다. 누군가가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민'이 됐건 '관'이 됐건 말이다.
-의식의 변화도 이 운동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들었다.
▶미국에서 본 광고다. 아들이 대학공부를 위해 집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찾아보니 아들 방에 들어가서 어떻게 하면 이 방을 나만의 공간으로 멋지게 꾸밀까를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미국은 그렇다. 은퇴 후의 생활을 즐기고 오롯이 자신을 위해 투자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퇴직자들은 자신의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하면서 자식의 인생에 간섭하고 그들의 경제적 문제까지 고민하고 있다.
-우리는 은퇴라면 곧 은퇴자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각종 금융기관에서는 노년을 제대로 살려면 '5억원이 있어야 한다, 10억원이 있어야 한다'며 겁을 주고 있다. 그런데 생각을 바꾸면 수억원의 목돈이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다. 대도시를 떠나 지방으로 가면 생활비를 줄일 수 있고 양주 먹던 것을 소주로 줄이면 된다. 그것도 어려우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된다. 집을 예로 들면, 유럽과 미국에서 인기 있는 20가구 정도가 사는 '코 하우징'(공동주거) 형태도 한 방법이다. 같이 모여 살면서 서로의 재능을 기부하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다. 손재주가 있는 사람은 마을의 일을 돌봐주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주민을 모아서 영어를 가르치고. 악기를 잘하는 사람은 악기를 가르치고…. 마을 안에서 품앗이 형태로 모든 걸 해결하는 방식이다. 집도 클 필요가 없다. 가끔 오는 자식들을 위해 큰 집을 마련할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게스트룸을 하나 지으면 된다. 생각을 바꾸면 오히려 큰돈이 들지 않는다.
-또 바꿀 것은 없는가.
▶성공에 대해서도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산에 올라갈 때 산의 의미가 있지만 내려올 때도 그것 또한 의미가 있다. 남에게 도움이 되고 함께 나누는 데서 행복감을 찾는 것이 진짜 성공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퇴직하고 나면 모든 관계가 달라진다. 엄청난 스트레스다.
▶지금까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우선 부부관계부터 다시 정의해야 한다. 여성과 남성의 다름을 인정하고 자녀에 대한 생각도 달라져야 한다. 자식은 엄연히 다른 인격체다. 또 화가 잘 나고 분노조절이 안 되는 시기다. 자기를 수양하고 명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의 노인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책은 어떤 선진국 못지않게 잘 돼 있다. 어떻게 활용하며 운용하느냐가 중요하다.
-현실감이 부족하고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우리의 정책은 교수나 공무원이 책상에 앉아서 만든다. 많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몇몇이 모여 뚝딱 만들어 버린다. 미국만 해도 '타운홀 미팅'이 수시로 열린다. 안건이 생기면 지역민들이 모여서 공청회를 갖는 것이다. 지역 TV방송이 이를 중계한다. 자연히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다양한 의견을 담아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공무원이 너무 자주 바뀐다. 조금 알 만하면 옮긴다. 전시행정도 문제다. 결과를 보여주기 위한 숫자에 매달린다. 한국만큼 숫자에 연연해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수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체감할 수 있는 온기가 우선이다.
-최근 노인들에게 필요한 전문용품 매장도 열었다.
▶노인이 되면 병뚜껑 하나 여는 것도 힘들다. 외출 시 지팡이를 놓을 곳도 찾기가 마땅치 않다. 그들의 어려움을 도와줄 수 있는 모든 용품을 한곳에 모았다. 노인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모은 매장이다.
-해외동포와의 연계도 꿈꾸고 있다.
▶건강검진이나 수술 때문에 해외동포들이 한국에 오면 그때부터 한국은 완전히 외국이 되고 만다. 해외동포가 800만 명이다. 그들이 한국에 오면 통신비 등 각종 혜택을 주고, 우리나라 노인들이 그쪽 나라에 가면 그곳에서 혜택을 받는다는 아이디어다. 이 조직이 커지면 모든 나라의 주거시설도 서로 나누어 쓸 수 있지 않겠는가.
-혹시 당신이 벌이고 있는 운동의 뜻을 의심받은 경우는 없나.
▶나는 단순 무식한 사람이다.(웃음) 그래서 이 일을 할 수 있다. 처음에는 교수들을 대표로 내세우고 실무는 내가 다 했으나 2, 3개월 지나니 모두들 손사래를 쳤다.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은 내가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무보수로 일하고 있다. 누군가는 씨를 뿌려야 하지 않겠나.
-원론으로 돌아가 당신은 퇴직자가 되어 본 적이 있는가.
▶40대 후반 아내가 아파 회사를 퇴직했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지만 사회와 동떨어져 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자발적인 퇴직자가 이럴진대 어느 날 회사에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면 어떤 느낌일까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노인학을 새롭게 공부한 이유 중의 하나다.
-당신은 생소한 한국 최초의 금융노년전문가이기도 하다.
▶2008년 한 보험회사에서 노년전문가를 뽑겠다고 했다. 그래서 신청을 해서 합격했고 한국으로 왔다. 미국에서 경험하고 공부한 것을 토대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금융인들에게 노년의 삶에 대한 이해를 도와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하는데 도움을 주는 교육이다. 금융인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하는 이들 중 노년을 이해하면 상당히 도움이 되는 업종이 많다.
-50플러스 운동을 하는데 어머니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어머니가 80대 중반이고 혼자 사신다. 그 연령에도 부산에서 일본어 강사를 하고 있다. 우리 집에 오실 때면 일본어 책을 빌려가고 좋은 책이 있으면 가져가신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노년 롤모델인 셈이다. 이처럼 나도 아들 둘에게 시니어라이프의 모델이 되고 싶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50대들이 여기에 모여 인생에 플러스가 되는 경험을 했으면 한다. 인생 후반부를 멋지게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고 나아가 일자리도 생기면 좋겠다. 50대가 자신감이 넘치고 행복해지는 세상에 작은 밀알이 되고 싶다. 욕심이 너무 많은가?
김순재 객원기자 sjkimforce@naver.com
사진 이성근 객원기자 lily_37@naver.com
출처 :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5752&yy=2015